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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피소드 모음집

Episode 5. 쇼핑백 순례자, Shoony Poony '션'

앞선 '소피' 에피소드에 등장한 아일랜드 청년 '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서로 처음 본 건 산티아고 순례길 첫 날이었다.

소피와 같이 첫 날의 힘겨운 언덕 위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마주치게 되었는데, 첫인상이 굉장히 강렬했다.

나뿐만아니라 그를 처음 본 모두에게 그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손에 든 쇼핑 백 때문이었다.

'션'과 '소피', 그리고 그 '플라스틱 백'

만약 우리가 도시를 여행하는 평범한 여행자였다면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테지만,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곳은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힘든 고난의 길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쇼핑백이라니!

백팩을 메고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는 그 묘한 조합이 신기하면서도 마치 동네 마실을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고 있는 쇼핑백에 웃음이 나오는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 웃긴건 순례자를 위한 특별제작된 가방이 아니라 정말로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사용 가능한 쇼핑백이었다는 점이었다.

뒤이어 우리가 궁금해진건 도대체 그의 쇼핑백안에는 어떤것이 들어있을까였다.

그가 보여준 백에는 먹을 것들이 들어있었다. 언제든 편하게 꺼내먹을 수 있게 빵과 다른 간식들을 넣고 다닌다고 했다. 아무래도 백팩안에 음식을 넣고 다니면 간단히 먹고싶어도 배낭을 내려놓고 열어야되는 불편함이 있는것이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설명을 마친 '션'은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며 헤어졌다.

'소피', '션', '샘'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던 그와 다시 마주하게 된건 '소피'와의 동행에서였다. '션'은 '소피'와 동행하고 있는 친구 중 한명이었다. 우리는 같은 숙소를 쓰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은 우연히 둘만 같이 걸었던 날부터였다.

그 날은 어쩌다보니 모두가 따로 걷게 된 날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션'이 보였다.

그 때까지만해도 어색했던 사이였지만 반갑기도 했기에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이서 한참을 걷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순간부터 순례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와 표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른 지도를 확인해보니 아뿔싸, 원래의 루트를 벗어나서 걷고 있었다.

다행히 크게 벗어난건 아니었다. 하지만 되돌아가기엔 꽤 많은 거리를 걸어온 터라 돌아갈 순 없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건 그대로 걸으면서 원래 루트로 최단거리로 합류하는 것이었다.

꽤나 힘들었던 언덕도 넘고 땡볕 아래 길을 걷다보니 뭔가 맥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음악을 틀었다.

Bobby Mcferrin의 'Don't worry, Be Happy'였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빠져버린 우리는 계속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나는 'Don't worry'를 스페인어로 맥주를 뜻하는 'Cervesa'로, 'Be Happy' 를 스페인의 대표 계란 요리인 'Tortiila'로 바꿔서 그 두가지를 먹고 싶다는 소망을 가득 담아 부르기 시작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순례자들은 더위와 걸음에 지쳐 힘이 빠졌을 때 웃음을 참을 힘도 없어 가끔 실없는 농담에도 끝없이 웃을 때가 있다. '션'이 이 날 그랬는지 나의 밑도 끝도없는 개사에 웃기 시작했고 이내 같이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새 길 위는 맥주와 또르띠야를 찾는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부쩍 가까워진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재밌게도 나머지 멤버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일명 '쎄르베싸 이 또르띠야(Cervesa y Tortilla)'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새 우리 그룹의 공식 노래가 되어, 걷는 내내 심심하면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다시 '션'과 걷던 때로 돌아와, 한참을 걷던 우린 드디어 맥주를 파는 작은 바(Bar)를 발견해 염원하던 맥주와 또르띠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실컷 불렀던 '쎄르베싸 이 또르띠야' 노래와 같이 맥주와 또띠야를 먹었고 이내 원곡처럼 걱정없이 행복해질 수 있었다.

'션'과 노래불렀던 맥주(Cervesa), 반가웠던 바(Bar)에서

이 글을 읽고 있던 사람들은 슬슬 'Shoony poony'는 무엇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길이 쉬웠는지 일행 중 누군가가 Easy peasy lemon squeezy~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이 뜻을 몰랐기에 옆에 '션'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 '식은 죽 먹기'와 같이 무언가 쉬울 때 하는 말로 뒤에 peasy는 easy와 같은 소리로 끝나는 단어이기에 붙인 말장난이라고 설명해줬다.

갑자기 '션'이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냐고 물어봤다. 

'식은 죽 먹기'가 떠올랐지만 엄밀히 말하면 easy peasy처럼 끝 음절이 똑같은 말장난은 아니었기에 "아마 없지 않을까?"라고 답해줬다.

아쉬워하던 '션'은 그럼 'easy'는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물어봤다. '쉬운'이라고 사전에 나오는 의미로 말해주자 5초 정도 고민을 하더니, 갑자기  '쉬우니 푸니!'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렇다. 'Shoony poony'는 '션'이 만들어 낸 단어였다.

'쉬우니 푸니'를 들은 모든 일행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내 'Easy peasy'가 아닌 'Shoony Poony'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쉬운길이 나오면, 심지어 쉽지 않은길이 나올 때도 쉽다고 생각하기 위해 'Shoony poony'를 외치기 시작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위해 '쉬우니 푸니'를 외쳐주는 모든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단언코 그것은 나를 놀리기위한것이 아니라 같이 걷는 나를 위해 그들이 만들어 낸 배려이자 관심이었다.

그리고 이 'Shoony poony'에는 내가 전해 들은 또 다른 사연이 있다.

'쉬우니 푸니'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이후에 '소피'와 '션'만 나머지 일행들과 떨어져 걷게 된 날이 있었다.

우연히도 둘이 같이 걸었던 그날이 소피가 걸은지 3000km가 되던 날이었다.

둘은 걷다가 우연히 조그마한 돌에 페인팅으로 그림이나 숫자를 새겨 넣을 수 있는 장소를 발견했고, 마음 따뜻한 '션'이 3000km를 걸은 '소피'를 축하하기 위해 작은 돌 위에 'Shoony poony'를 적고 뒷면엔 3000km의 숫자를 적어 그녀에게 선물을 해줬다고했다. '션'의 깜짝 선물에 '소피'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중에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션'의 따뜻한 마음과 그에 감동받은 '소피'의 마음까지도 오롯이 전달되는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내 마음 속 사전에 'Shoony poony'라는 단어가 추가 되었다.

'유쾌함'과 '배려', '따뜻한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소피'의 3000km를 기념하는 돌
바로 그 '쉬우니 푸니'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