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Albergue) :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호스텔과 같은 숙소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
이번 에피소드는 앞선 에피소드와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헤수스(Jesus) 할아버지를 만나 달콤한 맥주와 생수를 지원받은 뒤, 든든한 몸과 마음으로 다음 마을인 주마이아(Zumaia)로 향했다.
약 5km 정도를 더 걸어 겨우 마을에 도착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듣게 됐다.
이 마을에도 남은 침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하나 생각 했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이 8km 떨어진 곳이었고, 만약 걷는다 해도 잠잘 곳이 있는지도 불확실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벤치에만 앉아있다가 문득 옆을 보니 다른 순례자 한명이 옆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 뒤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반가움과 당황스러움이 골고루 느껴지는 제안을 했다.
그도 나와 같이 숙소가 없어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숙소가 없어 이곳 저곳 알아보니 유일하게 하나 남은 숙소가 방금 전화한 200유로의 침대 두개짜리 호텔 방이라고 했다. 마침 침대가 두개니 우리 둘이 같이자고 한 명당 100유로씩 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하룻밤에 보통 15유로에서 비싸면 20유로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하룻밤에 100유로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도,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얼떨결에 한방을 쓰게 되었다.
호텔로 향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호세 후앙(Jose Juan)'으로,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이란 마을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그리고 과일가게를 하며 마을을 지나가는 많은 순례자들과 교류하다보니 어느날 문득 본인도 걷고 싶어져 길을 나섰다고 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거창하게 순례길을 시작한 나에게는, 그 시작이 더 멋있고 낭만있어 보였다.
호텔에 도착해 방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돈을 쓴 보람이 있었다.
일반적인 알베르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은 방이었다.
비싼가격이 걱정되었던 처음과 달리, 편안한 숙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과 밖에서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짧은 하루에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마친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시원한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호세(Jose)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다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최근 TV에서 한국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너무 흥미로웠다는 것이었다. 주제를 물어보니 'Confucianism'에 대한 얘기였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영어 단어였다. 검색을 해보니 '유교'였다.
머나먼 타국에서 만난 스페인 순례자의 입에서 '유교'라는 단어를 듣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단순히 음악이나 드라마를 넘어 유교와 같은 과거의 K-Culture가 흥미롭게 느껴졌다는 점이 나에겐 굉장히 신선했다.
그는 특히 노인 공경에 대한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페인의 사람들은 굉장히 친근하지만 생각보다는 깊이가 깊지 않으며, 노인공경과 같은 문화가 따로 없어 아쉽다고 했다.
그렇게 '유교'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문화, 음식, 산티아고 순례길등 주제를 바꿔가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시끌벅적한 밤이었다.
나의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생각치 못한 행운들과 고마운 사람들로 덮혀 즐거운 하루로 변했다.
아쉽게도 서로 걷는 페이스가 다르다보니 그날 이후 같이 걷는 날은 없었지만, 우연히 길이나 마을에서 서로를 마주칠 때면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처음 만난 날로부터 며칠 뒤, 메신저를 통해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용감한 한국의 젊은 순례자 마루, 저는 저의 순례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과 만나서 즐거웠고, 우리의 대화는 유익했습니다. 그대의 용기있는 걸음을 응원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참 따뜻한 메시지였다.
그래요 호세, Hasta pronto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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