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한 첫날의 일이다.
가파르기로 유명한 언덕을 넘어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땀을 많이 흘렸는지 목이 너무 말랐다. 작은 가게를 들려 콜라 한캔을 사온 뒤 벤치에 앉아 마셨다.
"크으~~"
천상의 맛이었다.
목의 따가움을 한껏 즐기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두 명의 순례자도 옆 벤치에 앉아 나와 같이 콜라를 사서 마시고 있었다.
미친 듯이 걸은 뒤 마시는 콜라의 즐거움을 아는 순례자들로써 대화를 주고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들로, 이름은 각각 로베르토(Roberto)와 사라(Sarah)였다.
둘은 원래 친구는 아니고, 오늘 처음 만나 같이 걷고 있다고 했다.
간단한 통성명을 한 뒤 자연스럽게 같이 길을 걷게 되었다.
같이 길을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한 이유(순례길에서 가장 흔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대화 주제)를 듣게 됐다. 둘 중 로베르토(Roberto)만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현재 은퇴 후 세계 곳곳을 여행 중이었으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써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걸어보고 싶었던 길이었기에 시작했다고 했다.
은퇴 전에 했던 일들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는데, 놀라웠다.
젊었을 적엔 해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전역 후엔 제노니(Genoni)라는 작은 마을의 시장(Mayor)에 당선이 되어 15년간 봉사했다고 했다.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당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구글에 검색해 보니 정말로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처음 사귄 친구가 이탈리아 작은 마을의 전(前) 시장님이라니...
우연히 시작된 전직 시장님과의 동행은 따뜻했다.
길을 걸으며 스페인 사람들이나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나게 될때면, 로베르토(Roberto)는 못 알아듣는 나를 위해 그들의 말을 통역해 주었으며, 항상 "마이 프렌드(My friend)~"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힘들 때는 격려를, 즐거울 때는 같이 웃어주었다.
특히 이탈리아인인 그를 따라 진정한 에스프레소의 맛에 눈을 뜨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따뜻한 동행은 아쉽게도 앞선 에피소드에서 말한 것처럼 마을에 숙소가 없어 나만 더 걷게 되면서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이후 한동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였다.
이 소중한 재회는 순전히 '로베르토(Roberto)'의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그는 나보다 2일 먼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의 기쁨을 충분히 즐긴 뒤에도 떠나지 않고 나를 한번 더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재회 했을 때, 우리는 깊은 포옹으로 반가움을 나눴다. 나를 기다려줬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의 노력때문에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과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낸 친구가 되었다.
재회의 기쁨을 나눈 뒤 그는 점심을 만들어주겠다며 본인의 숙소로 가자고 했다.
우린 간단하게 장을 본 뒤 그의 숙소로 향했다. 그는 주방의 어느 것 하나 손대지 못하게 하며 요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파스타는 토마토소스에 치즈가 뿌려진 간단한 파스타였다.
화려하지 않고 순수했다.
한입을 먹자마자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간단하게 생긴 파스타가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파스타 중에 제일 맛있었던 파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맛있게 파스타를 먹으며 서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에 대한 소회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첫날부터 따뜻했던 그의 모습에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덕분에 스타트를 좋게 끊어 이후의 순례길도 너무 좋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종교적인 길에서 비종교인인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게 신기하다고도 했다.
그랬더니 그가 한 말이 나를 감동시켰다.
"마루, 걷는 동안 보았던 너의 친절하고 예의바른 모습에 감사해. 그리고 넌 종교가 없다고 했지만 너의 안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게 느껴져. 너의 순수한 미소를 보면 성스러운 빛이 보이거든."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 같았다.
그리고 같이 보낸 시간이 48시간도 안되는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렇게 따뜻하고 깊은 축복을 해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를 통해 살아온 삶, 나이, 함께 보낸 짧은 시간들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데 있어서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며칠 전 페이스북을 통해 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에게 온 답장은 이랬다.
"Thank you for your wonderful friendship for what you taught me"
그의 말은 여전히 따뜻했다.
Grazie mille, am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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